30분 만에 피카추 인형 뚝딱 … 3D 프린터 대중화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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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05 12:57 조회1,931회 댓글0건본문
인터넷 오픈소스 사이트에서 만화 캐릭터 피카추의 3차원 도면을 다운받는다. 큐라 등 전문 프로그램을 이용해 도면을 3D(3차원) 프린터가 인식할 수 있는 지코드(G-code)로 변환한다. 지코드가 담긴 USB를 3D 프린터에 꽂으면 프린터가 피카추 피규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3D 프린팅 전문 스타트업 에이팀벤처스에서 기자가 직접 피카추 모양의 피규어를 제작해봤다. 3D 프린터를 사용해 어린이 주먹만 한 크기의 피규어를 제작하는 데는 평균 5~7시간이 걸린다. 물론 품질 수준을 낮추면 30분 만에도 만들 수 있다. 프린터를 사용하는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단순하고, 출력 도중 소음도 생각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에이팀벤처스는 한국인 최초 우주인 후보였던 고산씨가 2014년 설립한 회사다. 3년 전 고 대표는 스트라타시스·3D시스템즈 등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3D 프린팅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그는 ‘3D 프린팅 시장의 대중화’를 목표로 저렴한 3D 프린터를 생산하고 3D 프린팅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9월 출시한 3D 프린터 ‘D3’는 110만원이다. 기존 외제 프린터들이 500만~600만원을 호가하는데 D3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일반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다.
에이팀벤처스를 비롯해 최근 3D 프린터 시장에는 좀 더 저렴한 가격대의 프린터 제품을 내놓거나 3D 프린팅을 대행해주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리서치 기관 스마테크 마켓은 3D 프린터 시장이 2017년 62억7130만 달러(약 6조8100억원)에서 2023년 193억6360만 달러(약 21조원)까지 클 것으로 내다봤다. 여전히 기업에서 신제품과 관계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주고객들이지만 교육·의료 현장에서 사용하거나 개인이 프린터를 구매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3D 프린팅 시장은 국내에서는 2000년대 후반에 형성됐지만 미국에서는 그보다 훨씬 앞선 1980년대에 이미 생겨났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3D 프린팅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금속 재료를 이용해 기계·자동차·항공 분야에서 주로 3D 프린터를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일반 사무실에서도 심심찮게 프린터를 구비해놓고 있다. 제품 컨셉을 정하거나 시제품을 만들어볼 때 굳이 공장에 맡기고 며칠씩 기다리지 않고 쉽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3D 프린팅이 대중화된 데는 저렴해진 기곗값이 한몫한다. 산업용 전문 프린터가 아닌 이상 100만~200만 원대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플라스틱 재료를 이용해 제품을 출력하는 경우가 제일 많은데 레진·세라믹·왁스 등을 이용해도 된다. 플라스틱 재료는 지마켓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데 1㎏에 1만~2만 원대에 살 수 있다.
고 대표는 “흔히 3D 프린터가 상상 속 제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며 4차 산업혁명의 상징이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3D 프린터로 5차 산업혁명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5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제조의 민주화’에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거대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소유한 대다수 공장에서 제조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규모 회사나 개인도 3D 프린터 같은 제조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대표는 “제조 강국인 우리나라가 제조업을 빼놓고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본다”며 “정부가 미래 제조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팀벤처스는 산업용 장비나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중소기업·학교 등에서 3D 프린터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중개 플랫폼도 제공하고 있다. 수억 원대에 호가하는 산업용 3D 프린터는 없지만 대신 혁신적인 제품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나 학생들이 이 서비스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학교나 학원 등 교육 현장에서도 ‘메이커 교육’ 붐과 함께 3D 프린터를 많이 찾는다. 메이커 교육이란 학생들이 스스로 제품을 기획하거나 디자인을 구상해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해보는 교육 과정을 말한다. 학생들은 나무로 만든 스피커, 석고 방향제 등을 만드는데 이때 3D 프린터는 필요한 제품이다.
의료계에서도 3D 프린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3D 프린터를 이용해 수술 부위를 제작하면 의사가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서 수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환자의 몸에 딱 맞는 모형의 인공관절·하악골을 만들어 이식하는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3D 프린팅 시장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중국에서는 칭화대 등 명문대에서 3D 프린터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술 수준도 선진국을 따라잡았다.
국내의 3D 프린팅 시장은 선진국에 비하면 뒤처져 있다. 국가별 3D 프린팅 시장 점유율을 보면 한국은 미국·독일·일본·중국 등에 밀려 8위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 3월 ‘2019년 3D 프린팅 글로벌 선도 국가’를 목표로 핵심 소프트웨어 개발, 국가 기술자격 신설, 수요 창출을 위한 시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